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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 리뷰와 윤동주 시인의 삶 (흑백 영화 분석)

by nabisanigangbada 2025. 12. 22.

동주관련 사진

처음엔 그냥 윤동주라는 이름이 익숙해서, 그리고 좋아하는 배우가 나와서 봤던 영화였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한참 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동주>는 큰소리로 감정을 흔드는 영화는 아니지만, 조용하게 마음속에 오래 남는 작품이었다. 시를 쓰는 사람의 삶이 이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다.

영화 동주의 줄거리, 조용한 흐름 속 깊은 울림

<동주>는 일제강점기라는 무거운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흔히 말하는 역사 영화처럼 거창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흘러가진 않는다. 대신 윤동주라는 한 청년이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마음으로 그 시절을 살아냈는지를 따라간다.

영화는 윤동주의 청년기부터 시작해 일본 유학, 그리고 체포되기 전까지의 삶을 잔잔하게 그린다. 이야기의 중심엔 그의 사촌 형 송몽규가 있다. 송몽규는 행동으로 저항하는 사람이고, 윤동주는 시로 자신의 마음을 견디려 하는 사람이다. 둘의 모습은 닮았지만 동시에 다르다. 이 대비는 영화 속에서 큰 긴장감 없이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처음엔 줄거리가 조금 느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서 인물의 숨결, 그 시대의 공기, 그리고 침묵이 조금씩 마음에 스며든다. 윤동주가 무언가를 말하지 않을 때, 오히려 더 많은 감정이 전해진다. 그는 늘 고민한다. 지금 내가 하는 이 선택이 옳은 걸까? 시를 쓴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질문은 과거의 한 시인만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도 익숙한 고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한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조용한 현재의 거울처럼 다가온다.

윤동주의 고뇌, 인간 윤동주를 들여다보다

많은 사람들은 윤동주를 ‘민족 시인’이라는 위대한 이미지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이미지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있다. 대신 윤동주를 그냥 한 사람으로 보여준다. 걱정하고, 흔들리고, 두려워하고,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청년으로 말이다.

그는 계속 자신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하는 선택이 정말 맞는 걸까?’ ‘나는 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까?’ 그런 마음이 말로 표현되지 않아도 그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화는 그 감정을 억지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긴 침묵과 눈빛, 그리고 시 한 줄로 그것을 느끼게 한다.

윤동주는 싸우지 않았다. 아니, 그의 방식은 달랐다. 총을 들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지만, 그는 시를 썼다. 그것이 그의 저항이었다. 송몽규처럼 행동하는 사람 곁에서, 그는 묵묵히 시를 통해 자신을 세상에 남기려 했다. 그 모습은 때로 무기력해 보이기도 했고, 때로는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인이라고 부를 때, 자칫 그 사람의 고뇌나 흔들림은 지워지기 쉽다. 하지만 영화 <동주>는 그런 인간적인 면을 오히려 더 조명한다.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흑백 연출이 만든 감정의 깊이

<동주>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흑백 화면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오히려 컬러가 빠졌기 때문에 윤동주의 얼굴이 더 선명하게 보였고, 눈빛 하나에도 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흑백이라 감정이 과하게 표현되지 않는다. 덕분에 이 영화는 설명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다. 인물들의 표정이나 숨소리, 그리고 시를 낭독하는 목소리가 화면에 오래 머문다. 그 긴 여백들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정적이 감정을 더 진하게 만든다.

감독은 음악이나 사건으로 감정을 끌어올리지 않는다. 시 낭독, 조용한 대화, 그리고 때때로 들리는 침묵이 이끌어가는 리듬 속에서 관객은 오히려 더 깊이 몰입하게 된다. 말없이 울리는 장면들, 설명되지 않는 고뇌, 그리고 가만히 흐르는 시선. 그것들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특히 얼굴을 오래 비추는 카메라워크는 설명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감정은 말로만 표현되는 게 아니니까. <동주>는 그걸 너무나 잘 보여준다.

 

결론
이 영화는 보고 나면 조용해진다. 말로 풀기보다는 마음으로 오래 남는 그런 영화였다. 윤동주라는 사람을 거창한 인물로 보는 대신, 나처럼 흔들리고 고민하던 청년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시대는 다르지만, 그가 했던 질문은 지금의 나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화려한 장면 하나 없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진하게 다가왔던 <동주>. 조용하지만 깊은 영화, 아마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